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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Paraná에서 살기로 했다. 본문

Mi Vida/Argentina

우리는 Paraná에서 살기로 했다.

billeeon 2025. 3. 13. 23:06

"함께라면 어디든 좋다."

 

외할머니 댁에서 떠나

우리는 Paraná, Entre Rios 주로 왔다.

이곳은 아내가 대학 생활을 하면서 자취를 하던 곳이다.

아내의 대학은 Santa Fe 주에 있는 법학 대학교다.

그래서 왕왕 버스로 등하교를 하곤 했다.

빠라나 (Paraná)의 첫인상

한 2-3일은 아내의 자취방에서 동거를 했고,

그동안 우리가 함께 묵을 장소를 알아봤다.

그리고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아파트의 한 방을 구했다.

이사 전 구석에 둔 내 짐
아르헨티나에서의 첫 슈퍼마켓 입성

아르헨티나에는 Dia, Carre four 등 유럽의 마켓들이 많다.

그리고 정말로 소고기가 많고 저렴하다.

물론 우리들에겐 저렴할지 몰라도 그들에겐 사정이 다르다.

페소의 가치가 늘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들은 늘 소고기를 먹는다는 게 부러운 점이었다.

아내가 사는 동네는 완전히 유럽의 이미지였다.

동네가 참 조용했다.

사람들도 여유로워 보였고 작은 마을의 분위기 딱 그 정도였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적당한 분위기

물론 위험지역도 있고 조심해야 할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간단한 식사
 

그리 배고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요깃거리가 필요해

근처 슈퍼마켓에서 간단한 음식재료를 구입한 뒤,

아내는 내게 식사 대용의 간식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이 도시 시내를 둘러보러 갔다.

 

동네의 모습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동네다.

대형 쇼핑몰은 대중교통을 타고 나가야만 한다.

하지만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관광의 목적이 아니었다 보니 작고 다양한 상점들만으로도 충분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디다스 매장이 있으니 모든 걸 갖춘 셈이었다.

(*그러나 6개월간 단 하나의 제품도 사지 않았다고 한다.) 

매우 인상적이었던 맥도날드

아주 인상적이었던 맥도날드

우리가 동거하던 집은 이 맥도날드 라인에 있어서

아주 가끔씩 아이스크림 같은 주전부리를 먹으러 들르곤 했다.

 
Paraná의 한 성당

동네의 여기저기가 모두 인상적이었고

나중에 이 성당 앞에서 한 행사가 있었는데,

아르헨티나는 국교가 가톨릭이라 그런지 모두 그와 걸맞은 애티튜드로 행사를 참여했었다.

나에겐 다소 생소하고 신기한 경험 중 하나였다.

 

말비나스를 기리는 아르헨티나 사람들

영국에 말비나스 섬을 뺏겨

아직도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이에 뼈아픈 역사의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영국에선 이 섬 이름을 포클랜드라 부르고 있다.

 

이 분쟁으로 패배하고 얼마 뒤,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축구 경기에서

마라도나가 잉글랜드로부터 승리하자

아르헨티나인들은 이것으로나마 작은 위로를 받지 않았나 싶다.

물론 다시 그 섬을 가져오는 것만이 그들에게 더 중요하겠지만

 

성당 내부의 모습

 

작지만 추억이 가득한 우리 부부의 첫 동거 집

더 넓고 아늑한 곳을 원했었다.

하지만 나는 빨리 짐을 풀고 아내와 살고 싶었다.

왜냐면 아내의 자취방은 이보다 더 좁았고

시내까지 한참을 걸어야만 했다.

그리고 내 짐을 둘 곳도 내가 머물만한 장소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나의 피로도는 커졌었다.

그렇다 보니 이 방은 내게 충분히 살만한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집을 더 알아보지 않았고

아내와 작지만 그래도 안전하고 좋은 위치에 있는 이 집에 머물기로 했다.

 

이제 막 동거하기 시작한 날

 

아내는 요리를 좋아한다.

그리고 상대에게 베풀기를 좋아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내는 늘 다양하고 맛있는 요리를 내게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이날도 아내는 내게 커피를 내주었다.

나는 그런 아내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웃는 모습도 아이 같은 목소리도 나는 너무 행복했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고 밖을 나갔는데,

첫날부터 나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말발굽 소리였다.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차도에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을 살면서 처음 봤기 때문이다.

아내가 처음으로 한국 라면을 먹었다.

 

아르헨티나는 매운 음식이 전혀 없다고 해도 무색할 정도로 정말 매운 음식이 없다.

마니아층을 위해 따로 만들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 같다.

아내는 처음에는 기침도 하며 잘 먹지 못했지만,

나중엔 잘 먹곤 했다.

물론 매워하면서 말이다.

 

나도 아내만큼 장보는 걸 좋아하나보다

우리는 자주 근처 슈퍼마켓에서 장을 봤고,

간식을 거의 늘 구입했던 거 같다.

 

현재까지도 손에 꼽힐 정도로 너무 맛있었던 파스타

처음으로 본 모습의 파스타였다.

종류는 다양했고, 맛도 신세계였다.

특히 아내가 거의 첫날에 해준 이 파스타는 잊지 못할 맛이다.

때로는 지금도 이 맛이 그립다.

 

우리 집에서 바라본 풍경

 

우리의 첫날 어쩌면 첫주는 이렇게 단순히 지나갔다.

동네 구경하고 밥 먹고 간식 먹고

집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