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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에서 온 편지 (부에노스아이레스) 본문
¡나는 아르헨티나와 결혼했다.!
내가 어릴 적, 왜였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홀로 집에 있던 세계지도를 보게 되었다.
그러곤 나는 나라 이름과 수도, 나라의 위치와 크기를 비교해 보는 놀이를 했었고,
마지막엔 가장 마음에 드는 국기를 골랐었다.
그 국기는 아르헨티나 국기였다.
하늘색과 흰색 그리고 노란빛 태양
그 당시 어린이였던 내겐 아르헨티나의 국기의 색과 모양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성인이 되었고, 나는 나의 그런 어린 시절을 잊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2019년 4월 나는 아르헨티나로 갔다.
아르헨티나로 가는 이 여행은 나의 첫 해외이었다.

36시간의 장시간 비행을 기다리며,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배고파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이 파스타가 너무 맛있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와인이 공짜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메뉴판이었나 와인 금액이 적혀있었었나 그랬던 거 같다.
좀 아쉬웠지만 앞으로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짧지는 않을 여행이기에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엘 아테네오(El Ateneo)는 크기는 작았지만 고급스러워 보였고 여유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아르헨티나는 이민국가로 특히 이탈리아, 스페인 이민자들이 많다 보니 건축물의 양식도 그들의 건축물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흔히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남미의 파리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유럽의 건물과 똑같다.)
생각해 보면 내가 처음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서 나왔을 땐
사진이나 매체에서 흔히 봐왔던 유럽과 같았다.
그런데 나는 어쩌다 아르헨티나로 여행을 하게 되었을까?
그건 아르헨티나에서 온 편지로부터였다.
사실 나는 언어 교환 앱을 통해 한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아르헨티나 사람이었고,
나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고,
우리는 잘 맞았다.
그렇게 우리는 2018년 4월 초 온라인에서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내 말을 믿지 못할 것 같았고,
오히려 나를 걱정하는 말들로 내 연애가 부정적으로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아르헨티나를 가기 몇 달 전까지

가족에게는 그래도 조금 더 일찍 알려드렸던 거 같다.
그리고 나는 여자친구를 실제로 만나기 위해 퇴사 후 바로 아르헨티나에 간다고 했다.
그 얘기는 이렇게 이루어지고야 말았다.

어쩌면 이기적인 확신일 수 있지만,
내가 아내와 온라인상으로 대화를 하면서 느꼈던
그 감정이 나를 여기 아르헨티나까지 오게 만들었다.
이 사람이라면 내가 어떤 상황에 있어도 내 옆에 있을 거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내와 언어 교환 앱을 통해 대화를 하던 첫날에...-
그녀는 실물은 본 적도 없는 나를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해 관계 유지를 하려고 노력을 해줬다.
나는 그런 그녀의 노력과 진심에 여전히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내와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첫 화는 짧게 마치며,
다음 화는 아내와 아르헨티나에서의 날의 이야기다.
비록 당시에 사진을 많이 담아두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 부부의 추억을 기록하려 한다.
아내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을 때,
왜인지 나는 더 안정감을 느꼈다.
나를 아는 확실한 내 편이 생겼다는 안정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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