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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에서 온 편지 (로사리오) 본문
로사리오(Rosario), 아르헨티나의 국기는 이 도시에서 탄생했다.



아주 짧고 강렬했던 부에 누스 아이레스의 여행을 마치고,
나는 나와 아내(당시엔 여자친구) 그리고 아내의 외할머니와 함께
외할머니가 살고 계시던 로사리오(Rosario, Santa Fe)로 발걸음을 향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겨우 도착한 외할머니 댁에서,
나는 간단한 저녁식사를 했다.
돈가스처럼 보이는 저 음식은 아르헨티나의 밀라네서 (Milanesa)라는 음식이다.
조리하는 방식은 돈가스와 같지만,
고기는 1cm 얇기의 홍두깨살을 사용하며 해머로 두들겨 더 얇게 펴는 게 특징이다.
한국에서도 가끔 우리는 이 음식을 즐겨먹으며,
소고기 대신 닭고기로 해서 먹는다.
특별히 나는 밀라네사 나폴리타나 (Milanesa Napolitana)에 매료되었고,
여전히 그 음식이 너무 그립다.















예쁜 곳도, 볼만한 곳도 많았지만,
카메라보다 내 눈에 더 많이 담아둔 거 같다.
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부터 아내는 혹시나 강도를 만나지 않을까 걱정을 (무진장) 했었고,
아르헨티나에 머무는 동안 꽤나 많이 조심했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또 생각보다 인종차별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날이 많았다.)
여하간 우리는 외할머니 댁 주변 동네를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던 것 같다.

외할머니 댁은 로사리오 시내가 아닌 시내에서 좀 더 밖으로 나가야 있는 한 작은 동네였다.
이 동네에는 부티 나는 건물도 있었고 작은 원룸 크기의 집들도 같이 구성되었다.
확실히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많았고,
공통점은 작은 주택들도 마당과 수영장이 있었다.
아내와 이 동네를 산책하며 둘러보면서
나는 이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깊게 자리 잡았다.
동네가 예쁘면서 우아했고 적당한 인구수(그때의 느낌으로는)와 분위기가 한적하고
심리적으로도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이 당시,
내가 이 동네에서 가장 감명 깊은 감정과 무언가 벅차오르는 것이 느낀 곳이
바로 위 사진의 장소였다.
아르헨티나는 우리나라와 계절이 정반대라서,
내가 여행을 갔던 4~6월은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시작이다.
그래서 이날은 가을의 좋은 날씨였다.
시원했고 햇볕이 따사롭게 비췄다.
많이 춥지도 않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 산책은 완벽했다.










내 기억으론 아르헨티나에 와서,
이곳 로사리오에서 처음으로 여학생들이 한국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노는 모습을 본 것 같다.
하필 우리가 가는 길이 그쪽 방향이라
그 학생들 옆을 지나치게 되었고,
아내는 지나가면서 학생들이 하는 얘기를 통역을 해줬다.
아내는 그들은 나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아무래도 학생들이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필 마침맞게 그들 눈에 한국인 같아 보이는 사람이 지나가고 있으니
호기심이 생긴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우리를 먼발치에서 천천히 따라오기도 했었다.)











외할머니 댁이 공항에서 아주 가까워 걸어서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근처 쇼핑몰에서 산책 겸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외할머니 댁에서 나는 처음으로
위스키, 보드카 등 다양한 술 종류를 마셨던 거 같다.

아내와 내가 로사리오를 떠나기 전 외할머니와 함께 식사를 했다.
간단한 식사였고 우리는 언제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물론 우리는 자주는 아니지만 3-4번은 더 뵀던 거 같다.

내가 직접 체험해서 느꼈던 아르헨티나의 이미지는
유럽과 미국의 어느 한 지점이었다.
건물이던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 역시 그랬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말하는 '정' 역시 그들에게도 있었다.
네ㅣ이버 사전에만 '정'을 검색해도 그 단어가 존재한다.
정 4 情 [정] 어휘 등급
명사 afecto, cariño
명사 afecto, cariño, inclinación
afección
여성형 명사 정, 애정
여성형 명사 기호(嗜好)
여성형 명사 감명, 감동
그들도 손님을 대접하고 선물하기를 좋아하며,
보답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서든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주 모르는 사람들과도 거리낌 없이 인사하고 대화를 한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느덧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며 친구가 되어있다.
그들은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대화를 사랑한다.
지루하고 조용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늘 누군가와 대화하고 만남의 소중한 시간을 멀뚱히 보내지 않는다.




아르헨티나에서의 식사는 늘 만족스러웠었다.
간식, 음료수, 후식 등 단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했다.
아르헨티나의 음식은 대부분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이민국가라는 나라답게 그들은 유럽의 것들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밀라네사 나폴리타나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탈리아 음식이다.
밀라네사, 엠빠나다 같은 음식은 우리는 이름만 들어도 충분히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느낄 수 있다.
듣기론 밀라네사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이탈리아 사람들보다
더 많이, 더 자주 그리고 가장 기본 음식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아쉽지만 우리는 일주일 좀 안되게 외할머니 댁에 머물렀고,
우리가 함께 동거할
Paraná, Entre Ríos (빠라나, 엔뜨레 리오스)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 지역은 아르헨티나 북동부의 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남쪽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북쪽에는 코리엔테스 주, 서쪽엔 산타페 주가 있으며, 동쪽으로 우루과이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실은 나는 말벡의 도시인 멘도사와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에도 가보고 싶었지만,
이 여행은 아내와의 첫 만남이었고,
가족분들과도 종종 만나는 만남(?)의 여행이었기에
주로 산타페 주나 엔트레 리오스 주만 다녔다.
이곳 산타페 주에 있는 로사리오(Rosario)에는
체 게바라 (Che Guebara)
리오넬 메시 (Lionel Messi)
앙헬 디 마리아 (Angel Di Maria)가
출생한 지역이다.
그래서 우리는 메시가 살던 집에도 잠깐 들렀었다.
그 당시 메시는 브라질에서 열린 코파아메리카로 인해
브라질에 가 있었다.
아내는 아마도 일주일 전에 왔으면 메시를 봤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 메시의 생일이었기에 집에서 파티를 했고 많은 유명 인사들이 와서
메시 외에도 정말로 많은 스타들을 볼 수 있었던 기회였었다.




이곳은 부자들이 사는 지역이다.
같은 로사리오지만,
이곳 분위기는 매우 미국적인 분위기를 띄고 있다.
매우 플로리다나 LA의 거리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주일만 떠 일찍 왔으면 볼 수 있었을 스타들...



세계 8번째로 큰 땅답게 정말 드넓은 땅과
최대 소 소비국답게 수많은 소를 흔히 볼 수 있다.
풍경은 평화로웠고 고요했다.
우리는 이렇게 외할머니와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 다른 도시 Entre Ríos 주에 있는 Paraná로 이동했다.
다음은 아내와의 동거한 이야기를 기록하려고 한다.
시간이 꽤나 많이 지나서 정확한 시간순으로는 기록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가능한 한 기억을 더듬어 우리 부부의 예전 추억을 정성스레 담아두고자 한다.
¡Nos vemos pro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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